작성일 : 10-09-15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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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리조나주 주도(州都) 피닉스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인 솔트강 주변의 피마(Pima·강사람들이란 뜻) 인디언 자치구역. 이곳 30대 이상 성인의 51%는 당뇨병을 앓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당뇨병 유병률이 가장 높은 곳으로, 당뇨병 관리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미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 당뇨병 사례 연구 지역으로 찾는 이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4월 말 이 지역 자치정부 사무실에 들어서자 몸무게가 100㎏이 넘는 여성 2명이 맞아주었다. 이 중 당뇨예방 책임자인 존 스톤(여·45)씨가 들려준 그의 가족사는 당뇨병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그의 아버지는 양쪽 발가락을 모두 자르는 고통 속에 4년 전 숨졌고 큰 언니는 말기 신부전(腎不全)으로 투석치료를 받다가 작년에 사망했다. 어머니는 당뇨로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으며 여동생도 혈당이 높아 음식을 조절하고 있다. 모두가 당뇨 합병증이 빚은 비극이었다.
피마 인디언들은 1950년대부터 미국 정부가 대거 식량을 지원함으로써 오랜 빈곤에서 벗어났다. 이후 ‘먹고 자는’ 데만 익숙해져 왔다. 말타고 사냥하던 과거는 사라지고, 집안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먹으며 TV를 보는 것이 하루 일상이 됐다. 그러자 ‘뚱보’가 급증하면서 1990년대에 45세 이상 남녀에서 당뇨병 발생률이 70%대까지 치솟았다.
이 지역 헬스센터에서 만난 거구의 당뇨 환자 3명은 살을 빼려고 걷기 운동에 열중이었다. 가리타(29)씨는 “당뇨를 치료하려면 살부터 빼라는 의사의 처방을 받았다”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24살에 당뇨병에 걸렸다는 메샤(33·여)는 자신의 몸무게가 250파운드(약 114㎏)라고 했다. 엄마(51)와 언니(34)도 당뇨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곳은 당뇨가 ‘가족병’인 셈이다. 이들의 평균 육체 노동 시간은 1주일에 2시간 안팎이다. 반면 야채 대신 지원 식량인 버터와 스테이크 등 고(高)칼로리 음식만을 먹는다. 총 에너지 섭취의 40%는 육류 등 고(高)칼로리의 지방질에서 얻고 있다.
피마 인디언 당뇨 연구 전문가인 헬스센터의 로든 박사는 “예전에 먹을 것이 부족할 때는 영양을 비축해 두는 ‘절약 유전자’가 작동했지만 먹을 것이 풍성해지면서 이 유전자가 오히려 비만을 재촉하게 됐다”며 “대다수가 뚱뚱해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인슐린 주사를 매일 맞으며 손·발이 썩어가는 당뇨 합병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과거 ‘백인과의 전쟁’ 대신 ‘당뇨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반면 같은 인종인 멕시코 거주 인디언의 경우 전통 식사를 고수하면서 에너지의 15~20%만 지방으로 섭취했다. 육체 노동시간도 일주일에 23시간 이상을 유지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비만이나 당뇨로 인한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당뇨병 환자는 401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8.3%다. 여기에 매년 50만명씩 새로운 환자가 발생, 이 추세라면 2030년에는 당뇨병 환자가 723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등에 남은 푸른 몽고반점이 우리와 같은 몽고계 후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피마 인디언들의 당뇨 재앙이 마치 우리의 전주곡처럼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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